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압해 정씨 (문단 편집) == 역사 == 기원전 1040년 경 중국 고대국가 [[주나라]]의 제후국으로 [[제(춘추전국시대)|제나라]]의 초대 제후(諸侯:왕)가 태공(太公:강태공)이고, 그 아들인 급(伋)이 제2대 제후가 되었는데,시호(諡號)가 정공(丁公)이고, 급(伋)은 이름인데 그 지손(支孫)이 시호인 정(丁)을 성(姓)으로 삼았다. 그 때부터 정(丁)이라는 성씨가 있게 되었다. 현재 중국에서는 정(丁)씨를 제양당(齊陽堂) 정(丁)씨라 칭하고 있지만, 우리나라에서는 고무래 정(丁)씨로 알려져 있다. 우리나라에 정(丁)씨가 등장한 가장 오래된 기록으로는 554년 2월 삼국시대 백제 [[성왕(백제)|성왕]]이 채약사(採藥師) 시덕(施德, 8품) [[반양풍]](潘量豊)과 고덕(固德, 9품) [[정유타]](丁有陀)을 함께 일본에 파견했는데 일본은 이때 처음으로 [[본초학]](本草學)을 알게 되었다. 우리나라 압해 정씨(押海 丁氏)의 시조(始祖)로 알려진 정덕성(丁德盛)은 원래 중국 당(唐)나라 사람으로 당의 문종(文宗)때 대승상(大丞相)을 지냈고, 당 무종(武宗)때 대양군(大陽君)에 봉해졌으며, 853년 (당나라 선종 7년, 신라 문성왕 15년) 군국사(軍國事)로 직간을 하다가 압해도(押海島)에 찬류(竄流)되어온 후 사면되었으나, 돌아가지 않고 신라에 귀화한 것이 우리나라 정(丁)씨의 시초(始初)이지만 그러나 [[나주 정씨(丁)|나주 정씨]](羅州 丁氏) 월헌공파는 정덕성이 아닌 [[고려]] 중기 의창현(義昌顯) 출신의 무신(武臣)으로 검교대장군(檢校大將軍)을 지낸 정윤종(丁允宗)을 시조로 여기고 있고, ≪압해정씨대동종안보 (押海丁氏大同宗案譜) 및 압해정씨대동보(押海丁氏大同譜)≫에는 우리나라의 모든 정(丁)씨를 압해정씨(押海丁氏)로 통일하였다. 그 외에 영광, 창원군(휘 寬), 창원, 의성, 나주 등 5파가 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